[칼럼] 조직의 숨은 인재! 그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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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3-05-10 09:02 조회 1,487 댓글 0본문
1908년에 설립된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은 평범한 곳이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지도자를 가르치는 곳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셰릴 샌드버그 전 메타 최고운영책임자(COO),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립자 겸 회장,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경영대 교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이 이곳을 거쳤다.
이 학교 교육의 핵심 중 하나는 리더의 ‘자신감’ 있는 행동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리더는 구성원 앞에서 당당하고 확신에 찬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주저하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는 순간 리더십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고 본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자기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도록 훈련받는다. 만약 말없이 조용하게 있다면 학생도, 교수도 문제가 된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완벽한 대답을 하려고 고민하지 말고 자신 있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작 55%만 믿어도 100% 믿는 것처럼 말이다.
왜 그럴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특정 모임에서 목소리가 작은 사람의 아이디어는 무시되기 쉽다. 반면 목소리 큰 사람의 경우 말할 때 보여주는 확신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제안이나 행동 방향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회의들을 떠올려 본다면 충분히 상상될 것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어떤 사람은 ‘상황’에 휩쓸린 탓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사람’에게 휩쓸린 것이다.
그룹 역학을 조사한 연구들을 보면 흥미롭다. 말 많은 사람이 조용한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고 인식하고, 입심 좋은 사람을 지도자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물론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일견 이해가 된다. 말이 많을수록 그를 주목하게 되고, 알게 모르게 조직 내 영향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말이 많다고 통찰력도 뛰어나다면 별문제 없다. 연구 결과를 보면 그런 상관관계는 없는 듯하다. 예컨대 간디, 앨 고어, 워런 버핏, 찰스 슈워브, 빌 게이츠, 루 거스트너 같은 경우다. 이들은 조용하지만 세상을 바꾸고 큰 영향력을 끼친 리더들이다.
베스트 셀러 작가 수전 케인은 저서 ‘콰이어트(Quiet)’에서 세상은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지만 정작 세상을 바꾸는 건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이들은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떠들썩한 사교모임보다는 독서를 좋아한다. 혁신과 창조에는 열광하지만 자기 자랑은 하지 않는다. 내세우지 않고 절제돼 있다.
회사 조직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역량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지위를 탐내지 않고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들. 그들은 혼자 어딘가에 콕 박힌 채 고독한 작업을 즐긴다. 예컨대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 아마존의 전자책 리더기 킨들이라는 제품명을 지은 마이클 크로난(Michael Cronan)이 그렇다.
그들은 이른바 ‘히든 브레인’이다. 역량은 탁월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인기 없는 일에 더 끌리는 열성적인 전문가들 말이다. 리더라면 그런 인재들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숨은 인재들의 공통점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자신의 브랜드를 구축하고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자기 일에만 매진하는 사람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남의 인정을 받는 것에 대해 이중적인 욕구가 있다는 점이다. 사람에게는 인정 욕구라는 것이 있다. 자기 가치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다.
이들도 마찬가지지만, 조금 다른 발로가 있다. 겉으로 드러난 욕구와 드러나지 않는 욕구다. 이들은 칭찬이나 명예를 얻는 데 정력을 쏟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성과를 냈다고 보여주려 하기보다는 자신을 더 숨기려는 편에 가깝다. 겸손을 넘어 가식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안으로는 자기애(愛)와 일에 대한 자긍심은 상상 이상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본인은 스스로를 인정하고 있으며, 창의적이고 자부심도 크다.
두 번째 공통점은 근면함과 꼼꼼함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오늘날 실리콘밸리에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는 숫기도 없고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거는 타입이 아니다. 청년 시절 그는 홈브루(Homebrew) 컴퓨터 클럽 회원과 어울리면서도 끝나면 집으로 조용히 돌아가 밤늦게까지 혼자서 꼼꼼하게 작업했다. 오전 6시 30분에 사무실에 출근하면 칸막이 안에 박혀서 엔지니어링 잡지를 읽고, 칩 매뉴얼을 공부하고, 세세한 회로 디자인을 구상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고요한 자정과 홀로 맞이하는 일출의 시기를 최고로 황홀한 시각”이었다고 묘사했다. 겪어 본 사람이라면 아마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향수를 제조한 조향사 데이비드 아펠(David Apel)도 유사하다. 그는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 전 실험실에서 수천 가지 원료를 혼합하고 화학 관련 지식을 쌓으며 수년간을 보냈다. 새로운 향을 만들어내기 위해 몇 달 동안이나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소위 ‘주스’ 제조법을 다듬었다. 100분의 1g, 혹은 가끔은 1000분의 1g까지도 정확히 계량하고 수백 가지 성분에 대한 실험 기록을 꼼꼼하게 정리해야만 했다.
세 번째 공통점은 책임지는 일을 즐기고 윤리 의식이 강하다. 맡은 일을 잘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어떻게 이겨내냐의 문제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은 심지어 중압감을 즐긴다는 사실이다. 해내기 어려운 일을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신이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때로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책임감에 이어 바로 연결되는 것이 윤리 의식이다. 자기 일은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책임을 회피하는 이들이 있다.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중 하나가 개인의 약한 윤리 의식이다. 윤리 의식이 약한 사람은 별 거리낌 없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미루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에 숨은 인재들은 자신의 열정과 능력을 100% 투입했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당당하게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다. 구질구질한 변명이나 핑계를 늘어 놓지 않는다.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일반적으로 책임이란 조직의 상사나 최고경영자(CEO)가 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숨어 있는 누군가가 그 무거운 짐의 무게를 상당 부분 떠받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히든 브레인을 관리하려면
이런 인재들을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까. 먼저 이들을 인정해주고 대우해줘야 한다. 그들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동료를 돕고 서로 협업할 수 있도록 윤활유 역할을 한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나’ 대신 ‘우리’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조직에 없어서는 안 될 소금 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이들은 경영진으로부터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때가 많다. 성과 평가 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준과 근거에 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최대한 역량을 발휘하도록 유도하려면 조직 내 ‘롤 모델’로, 누구나 알아주는 ‘팀 플레이어 또는 톱 컨트리부터(Top Contributor⋅최고 공헌자)’로 대우해주면 효과적이다.
또한 적절한 보상을 제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자기 홍보(PR)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본인의 가치를 모르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이들도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보수를 받으면 기뻐한다. 그럼에도 성과를 앞세워 타인의 관심을 끄는 일을 오히려 불편하게 생각한다. 조직은 이러한 성향을 고려해줄 필요가 있다. 동료와 경쟁에 대한 압박감을 줄이고 대신 협업을 장려하는 ‘팀 중심’ 업무 환경을 구축하면 효과적이다.
와튼스쿨(Wharton)의 애덤 그랜트(Adam Grant) 교수는 저서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에서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되면 자기 PR 행위의 이점이 줄어들어 직원들이 이미지 관리보다 회사 일에 에너지를 더 많이 집중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이기적인 테이커(taker)보다 아량 있는 기버(giver)에게 적절한 보상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시스템이다. 숨은 인재가 역량을 개발하고 일에 매진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들도 개인적인 발전에 관심이 많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에드워드 데시와 리차드 라이언이 발표한 자기 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서 알 수 있듯이 개인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과 아닌 것의 결과 차이는 엄청나다.
뛰어난 인재들을 조직에 붙들어 두려면 자발적으로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예컨대 구글이 3M에서 배워 도입해 유명해진 ‘20% 타임제’는 직원이 근무 시간의 일부를 자신이 생각해낸 프로젝트에 투자하도록 독려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좋아하는 일과 자기 발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태석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IGM세계경영연구원은 이코노미조선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해당 칼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