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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협상 실패를 줄이는 제안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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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1-12-08 10:19 조회 3,40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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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거래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협상에 들어간 당신, 어떻게 제안하는 것이 좋을까. 먼저 제안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상대의 제안을 기다리는 것이 유리할까.


협상을 하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 하게 되는 고민이다. 필자의 수강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면 답변은 대개 반반이다. 먼저 제안하는 것이 낫다는 쪽과 상대의 제안을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는 쪽이다.

과연 어느 것이 맞을까. 짐작했겠지만 ‘상황에 따라 다르다’가 정답이다.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협상에 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협상 경험과 연구를 통해 밝혀진 해답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거래 상황에 대한 ‘지식과 정보’다. 가지고 있는 정보가 충분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협상 결과는 달라진다. 


정보가 충분하다면 먼저 치고 들어가라

제안을 먼저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은 협상을 주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 때문이다. 이른바 ‘닻 내림 효과’다. 


닻을 내린 배가 멀리 가지 못하는 것처럼 최초에 제시된 숫자가 기준점 역할을 해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이후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현상이다.

심리학자이자 행동 경제학의 창시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에 의해 제시된 개념이다. 특히 정보나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행동하거나 결정을 할 때 사람들은 직관적 사고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협상에도 적용된다.

계약을 앞두고 협상이 시작되면 대부분이 상대방의 눈치를 보게 된다. 자신의 제안에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 지 또는 어떤 조건이 유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때 구체적인 숫자나 조건을 제시하게 되면 거기에서부터 협상이 시작된다. 그렇게 되면 알게 모르게 심리적 기준선으로 작용하고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다만 충분한 정보 없이 먼저 제안하게 되면 ‘승자의 저주’에 걸릴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해외 출장 도중 기념품을 사기 위해 시장에 들렀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가방을 발견하고 가게 주인에게 “15달러에 팔면 사겠다”고 제안했다.

비슷한 물건을 다른 사람이 25달러에 샀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던진 제안이다. 그랬더니 주인은 한 번 쓱 쳐다보더니 “오케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 기분이 묘하다. 협상을 잘못한 것인가 싶어 영 개운하지 않다. 왠지 바가지를 썼다는 느낌이 들고 좀 더 알아보고 살 걸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먼저 제안했던 것이 원인이다. 원하는 물건을 자신이 정한 가격에 거래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찝찝한 기분이 바로 ‘승자의 저주’다.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승자의 저주를 피하려면 차라리 상대의 제안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상대의 생각을 들어 보고 나서 역제안을 하면 된다. 그런데 상대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먼저 제안하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방법은 상대방의 전문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선생님은 이 업종의 전문가이십니다. 저보다 오랜 경험을 갖고 있죠. 이런 경우 통상 거래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라고 하면서 상대를 슬쩍 띄워 준다. 그러면 상대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조건의 범위를 자연스럽게 말하게 될 것이다.

둘째 방법은 토론을 제안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협상이 시작되면 거래 대상에 대한 논의가 오고 간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상대가 어느 정도를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을 구체화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그러니까 조건이 충족된다면 200만원 정도를 원한다는 말씀이지요. 맞나요”라고 슬쩍 떠본다. 


자신이 없다면 상대 제안을 유도하라 

 혹은 상대가 한 말을 제안으로 유도해 본다. “흥미로운 옵션들을 말씀하셨네요. 다시 한 번 요약해 주시겠어요”라고 도움을 구하는 식으로 질문하면 상대로부터 ‘제안’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셋째 방법은 시중에 나도는 얘기를 꺼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근방의 집들은 최소 7억원 정도에 팔린다고 들었습니다” 또는 “얼마 전 모 업체에서 이와 유사한 제품을 개당 8000원에 거래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슬쩍 운을 띄우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데 전혀 위험스러운 것은 없다. 단지 들은 얘기를 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협상에서 누가 먼저 제안할 것인지는 중요하다. 협상의 주도권을 쥘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집된 정보가 충분하다면 먼저 제안하라. 하지만 불충분하고 확신이 없을 때는 차라리 상대가 제안하도록 유도하라.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합의하려면 제안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높게 제안하는 것(high ball)이 좋을까, 아니면 낮게 제안하는 것(low ball)이 좋을까. 그것은 협상 당사자 간에 형성된 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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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관계 중심적 상황에서는 낮게 제안하는 것으로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관계 중심적 상황은 상대와의 오랜 거래로 신뢰 관계가 형성돼 있고 앞으로도 많은 거래가 예상되는 경우다.

만약 이 같은 상황에서 높게 가격을 제시하면 이제까지의 윈-윈 협상이 경쟁 협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양측의 우호적인 관계가 깨지고 서로 자기 잇속만 챙기는 협상이 되고 만다. 따라서 양측의 관계가 가격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해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면 거래 중심적 상황에서는 공격적으로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단연 유리하다. 거래 중심적 상황은 관광지에서 기념품을 사는 것과 같다. 상대와 다시 협상할 일이 없는 일회성 거래다.

실험을 통해 증명된 사례가 있다. 미국의 미시간대 MBA스쿨에서는 캠퍼스 내 학생 800명을 대상으로 400명씩 두 그룹으로 나눠 실험했다. 똑같은 물건을 파는데 A그룹에는 첫 제안을 700달러 이상으로, B그룹에는 700달러 이하로 했더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A그룹의 합의 금액은 평균 625달려였고 B그룹은 평균 425달러였다. 동일한 물건을 단지 제안 가격만 달리 했을 뿐인데 결과는 200달러나 차이가 났다.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제안 가격이 높으면 합의 금액도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을 이용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기술을 ‘에임 하이(aim high)’라고 한다. 이것이 주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가격을 높게 제안함으로써 해당 물건이나 조건의 가치에 대해 상대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마트 매장에 가 보면 진열된 두부 종류는 여러 가지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싼 두부가 있고 비싼 두부가 있다. 당신은 비싼 두부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 포장지에 나타난 성분에도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잘 모르겠지만 가격이 비싼 이유가 있겠지’라고 추측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을 노리는 것이다.

둘째, 가격을 높이면 상대에게 양보할 수 있는 여지도 커진다. 이때 양보해 줄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경우와 적은 경우가 있다면 어느 쪽이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까. 물어보지 않아도 빤하다.

게다가 상대는 당신의 양보를 끌어냈다는 점에 기뻐하고 협상에 대한 만족감이 올라간다. 그러니 비싸도 좋다. 허용된 범위 내에서 최상을 불러라. 높은 목표를 설정하면 높은 금액으로 합의할 수 있다. 요구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것이 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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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IGM세계경영연구원은 한경비즈니스에 해당 컬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10901539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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