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간 관리자, 고난의 시대를 헤쳐 나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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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3-07-17 10:10 조회 1,394 댓글 0본문
구글·세일즈포스·메타·트위터 등에서 감원 바람이 불었다. 경기 침체에 대비하고 자금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대상은 중간 관리자에게 맞춰졌다. 인원이 지나치게 많다는 이유다. 한국 은행들의 희망퇴직 대상자 연령도 40대 초까지 내려갔다. 한국의 대기업·중견기업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구조 조정도 저성과자와 고연봉 중간 관리자를 타깃으로 한다.
역피라미드 현상은 오래된 숙제지만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임원 자리는 줄고 신입 사원은 뽑지 않는다. 중간 관리자급을 과장·차장 구분 없이 ‘매니저’, ‘책임’ 등의 이름으로 넓게 정의하는 기업들도 많다. 권한이 늘지는 않았지만 책임질 범위는 커졌다. 가성비가 낮다며 월급 루팡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중간 관리자는 억울하다. 모호한 지시를 구체적 결과로 만들어 내고 경험이 적은 부하 직원들을 대신해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문제가 터지면 경험을 십분 발휘해 해결사로 뛰어야 한다.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나이는 들고 40대가 되면 불안해진다. 앞으로의 상황도 우호적이지 않다.
비대면 노동 환경에서 윗 상사와 아래 부하 직원이 바로 연결되니 중간 관리자는 오히려 소통에 걸림돌이 된다는 말이 나온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상사가 스스로 정보를 쉽게 수집하고 가공하게 해 줘 중간 관리자의 필요성을 줄일 것이다. 중간 관리자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본다.
자신만의 뾰족함이 방패를 뚫는다
‘타이탄의 도구들’의 저자 팀 페리스는 스페셜리스트가 돼야 하는지, 제너럴리스트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답으로, 한쪽에 편향되지 말고 스페셜한 제너럴리스트가 되라고 말한다. 전문 분야를 가지고 몇 가지 역량을 조합하면 대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조직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간 관리자는 자기 전문 분야에서만큼은 ‘이 일이라면 그 사람이지’ 하고 사람들의 머리에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비슷한 경력의 전문가가 많다 보니 최고가 되기는 쉽지 않다.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한두 가지 무기를 보강해야 한다. 회사의 그 누구와도 대화가 가능할 만큼 업을 독해하고 있어야 한다.
기능적 전문성에만 머무르면 새로운 기회를 만나기가 어렵다. 여기에 협상·스피치 등의 소프트 스킬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생성형 AI가 사람과 기계의 협업을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 것으로 기대되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은 온전히 사람의 몫이다. 이루고자 하는 일을 도모하고 설득하고 갈등을 푸는 것과 같이 제너럴한 영역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유념할 사항이 있다. 조직에서 역할이 확대되다 보면 자연히 제너럴리스트로서의 비중이 커지게 된다. 이때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업데이트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도리어 자기만의 색깔이 흐려질 수 있다. 직책 자체는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없다. 자신이 1인 기업이라면 무엇을 팔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상호 호혜의 고리가 성공을 부른다
중간 관리자는 말 그대로 중간에 끼여 있다. 아래로부터는 수평적인 역할을 요구 받고 위로부터는 수직적 역할을 요구 받는다. 수직적 문화는 나쁘고 수평적 문화는 좋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어느 경우에나 보편타당하지는 않다. 다양한 생각을 모으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는 직급을 떼야 하지만 의사 결정이 되고 목표가 세워진 일을 추진할 때는 책임자의 명확한 가이드가 필요하다.
중간 관리자는 딱 이 중간 지점에 있다. 전달자가 아닌 번역가의 위치다. 참여자 수에 물리적인 제한이 없는 비대면 회의 환경에서 나이를 불문하고 제품이나 서비스 단위로 미니 최고경영자(CEO)를 발탁하는 환경에서 단순 전달자가 설 자리는 없다.
치트키는 조직도와 명함과 별개로 사람 간의 상호 의존적인 연결에 있다. 애덤 그랜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와 웨인 베이커 미시간대 교수는 그들의 저서를 통해 사람 간의 호혜가 서로를 성공으로 이끈다는 명제를 다양한 이론과 사례로 증명해 보인다. 호혜는 본능에 가깝지만 당위적인 것이 아니다. 주기만 한다거나 받기만 해서는 호혜의 순환이 지속되지 않는다.
엘리트주의·부서이기주의가 극심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매출은 늘어도 주가가 제자리를 걸었다.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회사가 돼 가던 마이크로소프트는 사티아 나델라가 취임한 후 배우고 성장하는 문화, 타인의 성공에 기여하는 문화로 탈바꿈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성과 평가 때 자신이 직접 이룬 성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성과에 기여한 내용, 다른 사람의 노력으로 만든 성과를 기술하게 하고 균등한 비율로 평가한 것이다. 빈칸을 채우는 과정에서 각자의 성과는 더 커졌고 조직 전체의 성과는 당연히 증폭됐다.
회사의 제도가 받쳐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상사와 부하 직원의 구분을 떠나 서로가 원하는 명분과 실리를 적극적으로 살피고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각자의 성과가 커진다는 것은 자명하다. 또한 이러한 전략적인 상호 작용의 바탕에는 인간적 매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한다.
요식업 전문가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나 가수 임영웅 씨는 출중한 실력과 함께 가식 없는 모습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명인을 얘기하지 않아도 우리의 일터에는 왠지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 있다. 인간적 매력을 가진 사람이 성과가 날 만한 일을 맡을 확률도, 도움을 받을 확률도 더 높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관점 전환이 회복 탄력성을 키운다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에 매니저로 재직하는 지인은 누구도 역할을 정의해 주지 않아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더라고 한다. 또한 동료 평가 제도는 협력을 유도한다는 좋은 취지 못지않게 늘 감시받는다는 불안감과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준다고 한다.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모호해지면서 역설적으로 업무량이 과중해지고 협력의 과정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스트레스는 쌓이고 에너지는 고갈되지만 충전할 여력을 가지기도 힘들다.
회복 탄력성은 사후 처방약이 아닌 개인의 경쟁력이 되고 있다. 좌절을 겪고 누군가는 유리공처럼 깨지지만 누군가는 고무공처럼 이전보다 더 높게 튀어 오른다. 어떻게 해야 회복 탄력성을 높일 수 있을까.
역경을 대하는 관점을 적극적으로 전환해 보자. 인지 행동 치료의 창시자인 앨버트 엘리스 박사는 역경 자체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그 역경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나쁜 감정을 유발한다고 말한다.
도로 정체로 마을버스가 연착되는 상황에서 버스 운전사를 탓해서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건강을 위해 집까지 걸어가겠다고 생각을 바꾸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상황을 객관화하는 의식적인 연습을 통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또한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인다면 최악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정의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완전히 망했을 때를 가정하고 하루 1달러로 살아 보는 실험을 했다. 냉동 핫도그와 오렌지만으로 한 달을 지내고 보니 별로 힘들지 않다고 깨닫고 자신 있게 사업에 뛰어들었다.
직장에서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은 회사를 떠나는 것일 뿐이다.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만날 수 있고 미뤄 뒀던 일을 새로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퇴사의 시기를 지나 대잔류의 시기가 왔다고 한다. 시류는 계속 변하고 예측하지 못한 일들은 수시로 일어난다. 외부의 바람이 자기를 함부로 흔들지 못하게 하려면 자신만의 시장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인간적 상호 호혜의 선순환을 믿고 좌절의 순간에 한 발 물러나 조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100세 시대이지 않은가. 긴 호흡을 가지고 한 걸음씩 옮기는 과정에서 커리어의 지속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이용수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IGM세계경영연구원은 한경비즈니스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해당 칼럼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