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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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4-11-01 15:19 조회 140 댓글 0본문
1927년 러시아의 심리학자, 블루마 자이가르닉(Bluma Zeigarnik)은 유럽의 어느 카페에서 동료들과 식사를 하던 중, 한 종업원을 유심히 보게 됩니다. 손님들의 주문을 따로 메모하지 않고도 완벽하게 기억하고 응대하는 종업원이 신기했던 것이죠. 그래서 자이가르닉은 계산을 마친 후 자신의 일행이 어떤 음식을 주문했는지 종업원에게 물었습니다. 종업원은 당황하며 “계산이 끝났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답했습니다. 손님이 계산하기 전 까지만 주문을 기억하고, 자신의 일을 끝낼 때 머리 속도 같이 비워버린 겁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자이가르닉은 한 가지 실험을 했는데요. 우선 실험 참가자들을 A와 B, 두 그룹으로 나누고 그들에게 여러 개의 간단한 과제를 주었습니다. 이 때, A그룹이 과제를 할 때는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았고요. B그룹은 과제 중간에 계속 끼어들어 멈추게 하고 다른 과제로 넘어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종료 시간이 되어 두 그룹에게 자신이 어떤 과제를 했는지 기억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 결과 B그룹 참가자들은 A그룹보다 무려 두 배 정도 더 많은 과제를 기억해냈습니다. 게다가 B그룹이 기억해낸 과제 중 대부분은 끝까지 완수한 일보다는 중간에 멈추게 했던 것이었는데요. 끝내지 못한 일들로 인해 긴장하게 되고 미련을 갖게 돼 더 오래 기억하게 된 것이죠.
이 같은 현상을 연구자의 이름을 따서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미완성 효과’인데요.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이 마음 한 켠에 계속 남아 있거나, 성공보다는 실패했던 일을 자꾸 떠올리게 되는 것도 바로 자이가르닉 효과와 관련이 있습니다.
문제는,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쌓이면 그 일들이 계속 떠오르며 압박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는 건데요. 이렇게 되면 창의적인 생각을 해내거나, 새로운 일에 몰입하기도 어렵습니다.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자이가르닉 효과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남은 일들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기록해야 합니다.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의 로이 바움에이스터(Roy F. Baumeister)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남아 있는 일이 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때 해결해야 할 일들을 글로 기록하되, 당장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과제들로 나눠 정리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자기 스스로 하루의 마감을 알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회사에서 주어지는 업무의 최종 마감일은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 뒤인 경우가 많은데요. 그러다 보니 퇴근 길에도 업무가 끝났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죠. 그래서 임상 심리학자인 앨버트 번스타인(Albert J. Bernstein)은 미리 계획해 둔 오늘의 업무를 끝내면, 스스로 “오늘 할 일을 다 했다!” 고 말하고 뇌 안의 공책을 덮는 습관을 들이라고 조언합니다. 이렇게 해서 뇌가 일을 마쳤다고 인식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자이가르닉 효과는 감소하게 되니까요.
마지막으로, 머릿속 정보를 다른 장치로 옮기세요. 자잘한 일까지 모두 기억하려고 하기 보다, 일정관리 프로그램이나 달력 등에 기록해 두는 거죠. 그럼 이걸 내가 계속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긴장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데요. 이렇게 뇌의 공간을 비우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거나 새로운 업무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끝내지 못한 일, 잘못했던 순간을 너무 오래 붙들고 있으면 자책과 후회만 남기 마련이죠. 다시금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가려면 자이가르닉 효과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꼭 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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