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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금치] 사랑 찾아 왕관 버린 '세기의 로맨티스트' vs. '회피의 아이콘', 당신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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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026-01-27 10:26 조회 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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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2월 11일, 영국 BBC 라디오 방송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발표가 흘러나왔습니다. 즉위 1년도 채 되지 않은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가 “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왕으로서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없음을 알았다”며 퇴위 선언을 한 거죠.

멋진 외모와 세련된 패션 감각으로 인기가 많았던 에드워드 8세는 왕세자 시절 사교 파티에서 만난 윌리스 심프슨이라는 미국인 여성에게 첫 눈에 반합니다. 문제는 그녀가 이미 한 차례 이혼 경력이 있는 유부녀였던 것. 그런데도 둘은 사랑에 푹 빠져버렸고요. 아버지 조지 5세의 죽음 후 보위에 오른 에드워드 8세는 바로 심프슨과의 결혼을 추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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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Gemini)가 생성한 에드워드8세 초상화
 

하지만 미국인 유부녀를 왕실에서 순순히 인정할 리가 있나요. 가족은 물론이고, 정부 내각과 교회, 여론까지 그들의 결혼을 거세게 반대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에드워드 8세는 결국 스스로 왕관을 내던지고 사랑을 선택했는데요. 누군가는 그를 두고 ‘세기의 로맨티스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조직 관점에서는 ‘무책임의 대명사’라고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포기한 것은 단순한 왕위가 아니라, 리더로서 짊어져야 할 불편한 책임들이었으니까요.

당시 영국은 대공황의 늪에 빠져 있었고, 독일의 히틀러가 전쟁의 불씨를 지피던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국민들은 국왕이 흔들리는 나라의 중심을 잡아 주길 바랐죠. 하지만 에드워드 8세는 대중의 인기는 원하면서, 서류 더미와 국정 운영의 압박은 견디지 못했습니다. 화려한 조명 앞에 서는 것은 좋아했지만, 매일매일 이어지는 리더로서의 의사결정은 기피했습니다. 기밀 서류들이 든 가방을 아무 데나 던져두어 국가 보안을 위험에 빠뜨렸고, 정해진 공식 일정보다는 자신의 유흥과 사랑을 우선시했죠.

결혼 문제로 정부 및 교회와 갈등이 깊어지고 ‘나라의 존망과 가치를 지키느냐, 개인의 욕망을 택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설득과 조정이라는 리더의 고통을 감내하는 대신 ‘퇴위’라는 극단적인 회피를 택했고요. 그가 남긴 뒷감당은 수줍음 많고 말을 더듬던 동생(조지 6세, 영화 ‘킹스 스피치’의 주인공)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습니다. 리더의 무책임으로 인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리더의 공백을 메우느라 사투를 벌여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반전!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역사가들의 평가입니다. 만약 에드워드 8세가 계속 왕위에 있었다면, 우유부단하고 나치에 우호적이었던 그의 성향상 영국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가 책임을 회피하고 떠난 덕분에, 오히려 심각한 말더듬증을 극복하며 국민과 함께 폭격을 견뎌낸 ‘진정한 리더’ 조지 6세가 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진짜 리더십은 사실 ‘어려운 결정의 순간’에 증명되는 것 같습니다. 불편한 문제가 있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사람, 그리고 결과에 대한 비난까지 감수하는 책임의 종결자… 그런 사람을 우리는 ‘진짜 리더’라고 부릅니다.

왕관의 무게는 곧 ‘직면의 무게’라는 것.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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