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700번 말해도 똑같다면? '이것'부터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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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025-11-10 09:59 조회 46 댓글 0본문
조직 변화, 왜 이렇게 어려울까?
많은 기업이 화려한 비전 선포식과 거창한 핵심 가치를 내세우며 변화를 꿈꾼다. 그러나 선언만으로 조직이 바뀌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형 스크린 속 열정적인 최고경영자(CEO)의 연설이 끝나도 몇 주 뒤 사무실 풍경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길고 결론 없는 회의, 형식적인 보고서, 부서 간 단절된 정보 공유는 여전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변화를 실행하는 최소 단위인 ‘행동 습관’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략과 비전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실제로 그 길을 걷게 하는 힘은 매일 반복되는 작은 실행 습관에 있다. 고객 불만을 24시간 내 응답하는 습관, 모든 팀원이 주 1회 최신 시장 동향을 공유하는 루틴이 전략을 살리고 성과를 바꾸는 것이다.
성공 기억 때문에 빠지는 ‘관성’의 함정
기업 리더들은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잘 알지만 막상 변화를 시도하면 막막해한다. 새로운 핵심 가치를 내세우고 소통 활동을 벌여도 그것이 구성원의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조직문화를 만드는 진짜 힘은 추상적인 핵심가치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행동 패턴, 즉 ‘조직 루틴(Organizational Routine)’에 있다. 리처드 넬슨과 시드니 윈터 같은 저명한 학자들이 이미 1980년대부터 강조했듯이 이 루틴이야말로 기업의 운영 방식과 혁신 역량을 결정하는 핵심이다.

이 루틴은 팀과 조직 전체에서 구체적인 ‘일하는 습관’으로 나타난다. 팀 차원에서는 누가 어떤 일을 맡고, 어떻게 협업하며 소통하는지, 회의를 어떻게 진행하는지가 루틴이다. 조직 전체에서는 공식적·비공식적 업무 프로세스, 부서 간 협업 방식, 의사결정 체계 등이 모두 루틴을 이룬다. 조직 루틴은 단순히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안정성과 변화를 모두 가능하게 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제품 개발팀의 정기 회의 루틴은 프로젝트의 안정성을 유지하지만 그 안에서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면 혁신으로 이어진다. 또한 ‘고객 중심’이라는 추상적인 핵심가치와 달리 ‘고객 불만 접수 후 24시간 내 응답’처럼 구체적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실행과 변화가 훨씬 쉽다.
한번 형성된 조직 루틴은 바꾸기 어렵다. 특히 성공한 기업일수록 변화가 더 어려운 이유는 과거의 성공 경험이 낳은 ‘관성’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성공은 현재의 일하는 방식을 굳건하게 만들고 ‘원래 해오던 방식’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이라는 믿음을 심어준다. 이러한 관성의 늪에 빠져 몰락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노키아와 코닥이다. 이들은 기술력이나 자본이 부족해서 망한 것이 아니다. 과거의 성공 공식에 갇힌 채 새로운 시장 변화에 대응하는 ‘습관’, 즉 조직 루틴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변화는 '작은 루틴'에서 시작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관성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거대한 혁신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조직의 일하는 방식, 즉 조직 루틴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변화를 위한 가장 확실한 첫걸음이다.
아마존은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30분 동안 ‘여섯 페이지 분량의 내러티브 문서’를 읽는 루틴을 만들었다. 파워포인트 발표를 금지하는 이 방식은 불필요한 슬라이드 제작과 형식적인 부분에 대한 비효율적인 논쟁을 줄이고 본질적인 논의에 집중하게 한다. 이는 ‘고객 중심적 사고’라는 아마존의 핵심 가치를 구체적인 행동 양식으로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다.
아마존이 회의 방식을 바꿨다면 넷플릭스는 ‘솔직함’을 소통의 핵심 루틴으로 만들었다. 단순히 말로만 솔직함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동료에게 직접적인 피드백을 주고받는 문화를 조성한 것이다. 이처럼 행동 양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힘이 넷플릭스의 혁신 문화를 완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계적인 품질을 자랑하는 도요타 역시 마찬가지다. 생산 라인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누구든 즉시 작업을 멈출 수 있는 ‘안전 멈춤(Stop the Line)’ 루틴이 오늘날의 도요타를 만들었다. 이 단순한 행동 규칙이 최고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는 핵심 비결 중 하나이다.
국내 한 IT 기업은 루틴 변화를 통해 혁신 속도를 높였다. ‘하루 10분 스탠딩 미팅’을 도입해 즉각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행동을 정착시켰고 이 덕분에 신제품 출시 기간이 20%나 단축됐다. 또한 모든 자료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행동 양식을 확립해 팀별 회의록부터 경영진의 의사결정 과정까지 투명하게 공개했다. 이는 조직 전체의 지식을 효과적으로 확산시키는 강력한 힘이 됐다.
특정한 조직 루틴은 실질적인 수치로 증명되는 차이를 만든다. 한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효과적인 협업 습관을 가진 조직은 그렇지 않은 곳에 비해 생산성이 3.5배나 높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아이디어 제안과 채택 절차가 명확한 조직의 경우 혁신 제안이 무려 67%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일관된 업무 프로세스와 투명한 소통은 직원들에게 ‘내가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일할 수 있다’는 신뢰를 줘 조직의 이직률을 45%나 감소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조직 습관을 바꾸는 세 가지 실행 포인트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전략과 비전을 선언하면서도 이를 실행할 습관을 바꾸지 않는다. ‘고객 중심’을 외치면서도 고객 불만이 접수되면 여전히 복잡한 결재 라인을 거쳐 답변하는 조직, ‘민첩성’을 강조하면서도 작은 의사결정에 과도한 보고를 요구하는 조직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간극이 장기화되면 구성원들은 변화에 대한 신뢰를 잃고 냉소적으로 변한다.
조직의 습관을 바꾸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쁜 습관’부터 과감히 버려야 한다. 제로베이스 습관 재정립이다. 새로운 습관을 덧씌우는 것보다 비효율적인 기존 습관을 없애는 것이 더 강력한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불필요한 파워포인트 발표 금지를 선언하거나 결론이 있기 어려운 회의는 시작하지 않기 등 기존의 비생산적인 루틴을 먼저 제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전에 조직에 쌓인 관성의 짐을 덜어내는 효과를 가져온다.
둘째, 변화의 ‘심리적 보상’을 설계해야 한다. 감정을 움직이는 루틴이다. 논리적인 당위성만으로 습관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루틴을 통해 얻는 심리적 보상을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솔직한 피드백 루틴’을 만들 때 단순히 비판을 주고받는 행위를 넘어 ‘우리가 서로의 성장을 돕는 동료’라는 신뢰와 소속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변화를 통해 얻는 긍정적인 감정이 반복될 때 새로운 습관은 자연스럽게 조직문화로 뿌리내린다.
셋째, 단순한 루틴을 ‘상징적 의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의미를 부여하란 것인데 습관을 단순한 절차가 아닌 조직의 가치를 담은 의식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하루 10분 스탠딩 미팅’이 단순히 회의 시간을 줄이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는 늘 민첩하게 움직이며, 결론을 빠르게 도출하는 팀’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식이 될 때 그 힘은 배가 된다. 행동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구성원들은 변화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훌륭한 전략, 제도, 첨단 시스템도 일하는 습관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앞서 언급된 사례는 일하는 습관, 즉 조직 루틴이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끄는 강력한 무기임을 보여준다. 결국 작은 습관의 변화가 모여 조직의 미래를 바꾸는 것이다.
정철 IGM세계경영연구원 특임교수 겸 레딩대 헨리비즈니스스쿨 부교수
* IGM 한경비즈니스 칼럼을 정리한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