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디지털 시대에 조직이 갖춰야 할 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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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4-07-08 10:09 조회 516 댓글 0본문
디지털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키오스크가 하나둘 생기나 싶더니 이제는 처음 들어간 가게에서 직원이 아닌 키오스크를
먼저 찾곤 한다. 인공지능(AI)도 오래전부터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내비게이션, 콘텐츠 추천, 번역 등은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한편으로는 디지털에서 앞서가는
테크기업, 스타트업의 틈바구니에서 전통기업들의 운명이 갈리고 있다. 일렉트릭
기타 시장이 점차 쇠퇴하는 상황에서 기타 초보자를 위한 온라인 강의 애플리케이션(앱)을 출시한 펜더는 재도약에 선공했고 제때 대처하지 못한 깁슨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디지털의 위력에 가속이 붙고
있는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 회사가 순풍을 타느냐 역풍을 맞느냐다. 거친 변화 속에서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해 어떤 역량이 필요한지 짚어보자.
디지털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가
생성형 AI의 기세는 놀랍다. 또 언제 어떤 기술이 우리를 놀라게 할지 모른다. 조금만 관심을 늦춰도 디지털 격차가 생기고 뒤쫓아가기 바쁜 형국이 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AI 시대에 리더들에게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1700명의 최고영영자(CEO)에게 물었다. 그 결과 답변자의 70%가 ‘적응성(Adaptability)’을 꼽았다. AI도 다른 기술도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한 번 적응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변화는 당연하고 늘 새로 배운다는 태도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적응성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까. 차 운전자는 전체 상황을 보고 바로 대응하지만 탑승자는 감각기관마다 들어오는 정보가 달라서 혼란스럽다. 운전자가 멀미를 하지 않는 이유다. 탑승석에 머물면 멀미에 시달리지만 직접 운전하면 두려움과 혼란이 다음 경로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로 바뀐다.
그러나 운전석에 올라타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이 업무에 생성형 AI를 활용한다고 답변한 비율은 36%에 그쳤다. 20대는 50%에 가까웠지만 30~50대는 30%대 초반으로 나타났다.
기업의 리더부터 앞서서 스스로 적응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조직의 리더가 ‘나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고 기술은 다른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면 변화의 속도를 이길 수 없다. 이미 비즈니스와 디지털 기술 사이의 경계는 무뎌져 있다. 비기술자가 노코드 툴들을 이용해 프로토타입을 뚝딱뚝딱 만들어 시장의 반응을 테스트하는 세상이다.
리더는 기술이 내포한 진정한 가치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Robotic Process Automation)는 업무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더 가치 있는 일을 할 시간을 벌어준다. 클라우드는 비용을 줄이는 수단이기 전에 신사업을 즉각 테스트해 보는 기회를 준다. 생성형 AI는 경쟁자가 아니라 개인의 역량을 증강시키는 협력자다.
이런 기술들을 리더가 직접 사용해 보고 기회, 한계점, 위험을 체험한 후에 실험의 장을 마련하도록 하자. RPA, 생성형 AI, 노코드 툴, 데이터 분석 툴 등을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교육을 제공해서 구성원이 디지털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글로벌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기업 SAP는 다양한 AI 툴을 내부 직원에게 제공한 결과 대량의 정보를 분석하는 시장 조사 업무의 생산성은 40~50%, 콘텐츠 제작의 생산성은 20~30% 증가했다고 밝혔다.
다음 단계는 개인 차원의 생산성 향상에서 나아가 회사의 사업, 프로세스에 맞는 적용 사례를 발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에 내부 데이터를 추가로 학습해서 회사 전문 분야에 대한 질의응답이나 제품 설계안 작성, 불량품 판별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물론 디지털 기술이 만능 열쇠는 아니다. 오랜 기간 조정되면서 복잡해진 업무 프로세스에 기술을 적용한 결과의 영향은 간단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컨대 고객 서류를 자동 판독할 때 발생하는 오류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지, 사람이 추가로 점검할지 등의 판단을 회사마다의 상황에 맞춰야 한다. 인간과 기술 간의 협업 포인트를 발굴해 시너지를 내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안정적 기술 인프라가 필요한 이유
디지털 변화에 맞춰 발 빠르게 실험하고 프로세스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축적된 데이터와 안정적인 기술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
데이터는 21세기의 원유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자원이다. 필자가 재직한 회사, 컨설팅했던 회사들이 안고 있는 공통된 난제는 데이터가 있지만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IT 프로젝트에서 데이터 이슈는 항상 발생하지만 근본적인 조치를 하지 못하고 봉합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데이터를 정제하고 축적해 온 회사들은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선보였다. 미국의 금융경제뉴스 서비스업체 블룸버그는 40년 넘게 엄선해 수집한 금융 문서를 학습해서 금융에 특화된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최초로 선보였다. 미국 전통적인 농기계 제조업체 존디어는 농업 관련 데이터를 활용한 컨설팅 서비스 기업으로 변신했다.
나이키가 2019년 아마존에서 철수했던 이유는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나이키는 자체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어 멤버십 회원을 확대하고 데이터분석 회사들을 인수했다. 결과적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하고 고객 경험을 크게 향상할 수 있었다.
또한 비즈니스 계획에 맞춘 기술 로드맵하에서 내부의 기존 IT와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등의 신기술이 서로 매끄럽게 연결돼야 한다. 이런 큰 그림은 외부업체에만 의존할 수 없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기술의 변화에 대한 유연성을 갖추는 동시에 기술 도입과 운영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전체 아키텍처를 통제하는 역량을 자체 보유해야 안정적으로 디지털 혁신을 지원할 수 있다.
회사에서 여러 디지털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경우에 공통적인 인프라는 통합하고 일관성 있게 보안을 설계해야 효율적인 운영과 빈틈없는 개인정보보호가 가능하다.
이렇듯 신기술 도입, 운영, 업그레이드, 폐기가 서비스 단절 없이, 사고 없이 이뤄지기 위해선 기술 발전에 맞춰 이를 전문적으로 처리하고 통제할 내부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특정 분야 신기술 전문인력을 채용하는 것 뿐 아니라 기존 IT 인력을 꾸준히 리스킬링, 업스킬링할 때 기술 역량의 간극이 줄어 신구 기술 간 상호운용성과 신기술 활용력이 높아질 것이다.
디지털로 대체될 수 없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기술이 보편화되면 그 자체로 차별화하기는 어렵다. 기술을 이용한 다양한 실험을 하는 목적은 기술 기회를 활용해서 기업 고유의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고객 경험을 향상하는 것이다.
돈을 들여 설치한 키오스크가 사용하기 복잡하다면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셈이 된다. AI 상담원이 고객에게 제대로 응대하지 못한다면 고객 민원이 늘어나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생성형 AI가 인간의 일을 대체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지만 생성형 AI는 과거에 기록된 데이터를 요약해 놓고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말을 이어서 할 뿐이다. 인간의 기록을 넘지는 못한다.
AI는 스스로를 고치지 못한다. 학습한 결과를 정답이라고 확신한다. 과거에 일어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 앞에서 비판적으로 질문하고 창의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은 앞으로도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을 것이다.
이용수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IGM 한경비즈니스 칼럼을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