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객의 진짜 모습 발견해 재도약한 기업, ‘힐티’와 ‘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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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4-07-04 09:56 조회 405 댓글 0본문
인간 공학 디자인이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들고 있다. 냉장고 문을 열 때 눈이 피로하지 않게 냉장고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고 양손에 물건이
가득할 때 냉장고에 발을 갖다 대면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냉장고에 따뜻한 배려를 느낄 정도다. 세탁기, 청소기에도 이런 세심한 기술이 들어간다. 지금은 고객에게 제품을 팔기보다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경쟁력인 시대다.
이렇게 고객이 겪는 상황을 꼼꼼하게
연구하는 시도가 최근 일만은 아니다. 1979년 당시 26세였던
디자이너 패트리샤 무어는 노인을 위한 디자인을 제대로 하려고 노인 분장을 하고 3년간 보냈다. 겉모습만 바꾼 게 아니라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쓰고 귀에는 솜을 넣고 철제 보조기를 이용해 걸음걸이도 불편하게
만들어서 노인이 겪는 불편을 몸소 체험했다. 무어는 소리 나는 주전자,
저상 버스 등 당시로는 획기적인 제품을 발명했다.
오직 고객에게 집착한다는 아마존의 철학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고객 중심을 외치지 않는 회사는 없다. 회사 홈페이지에, 신년사에 빠지지 않는 핵심 키워드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존 사업을 영위해 온 전통적 기업들은 그들의 고객을 타성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고객을 위하는 마음과 고객을 제대로 아는 것은 다르다. 많이 알려진 디자인 싱킹(Thinking) 기법, 블루오션 전략의 구매자 효용 지도 같은 방법의 공통점은 철저하게 고객에게 빙의하라는 것이다. 그 순간 비즈니스 모델의 다른 요소는 실타래처럼 풀린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고객 가치를 재정의한 ‘힐티’
1941년 유럽의 작은 나라인 리히텐슈타인에서 설립된 힐티는 건설 공구를 만드는 전통적인 제조 회사였다. 힐티 제품은 튼튼하고 안전하고 편리하다는 평을 얻었고, 회사는 쑥쑥 성장했다. 그러나 저가 공세를 하는 경쟁사 때문에 이윤은 점점 줄어들었다. 힐티는 건설 업체가 저렴한 만큼이나 쉽게 망가져 버리는 공구를 선택하는 이유를 파고들었다.
건설 업체는 건축 프로젝트를 제때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요한 시점에 딱 필요한 성능을 내는 공구를 사용하면 되지, 굳이 멋진 공구를 소유할 까닭이 없다. 잘 호환되지 않는 부품을 끼워 맞춘 저가 제품을 사서 몇 번 쓰고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구 관리도 잘될 리 없었다. 힐티는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공구를 판매하는 대신 빌려주는 구독 서비스를 내놓았다.
힐티는 최신 도구를 제공하고 신속하게 수리, 업그레이드, 교체해 준다. 고객 입장에서는 구입하고 재고 관리하고 고치는 수고 없이 필요한 때 최상의 상태인 도구를 사용하는 효용을 얻는다. 당시 1990년대 후반, 자동차 리스 같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구독 서비스는 있었지만 B2B(기업과 기업 간 거래) 사업에서 구독은 파격적인 시도였다.
고객 가치를 ‘소유’에서 ‘사용’으로 바꾸자 필연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의 혁신이 이어졌다. 팔기만 할 때는 건설 업체 구매 담당자가 달라는 대로 주면 됐지만 공구를 대여하고 관리를 대행하기 위해서는 아파트, 터널, 도로 등의 건설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현장마다 어떤 도구가 최적일지 파악하고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은지 알려줘야 했다.
힐티의 판매 직원은 재훈련을 받고 컨설턴트로 거듭났다. 업무 프로세스에도 포장재 개발, 공구 보관, 배송, 수리 등 새로운 과정이 추가됐다. 고객은 새로 만들어진 온라인 채널에 들어와서 어떤 공구를 빌릴 수 있는지 재고 상태는 어떤지를 미리 파악하고 사용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됐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한 힐티는 전통적인 제품 판매뿐 아니라 건설 현장의 고충을 해결하는 종합 솔루션 회사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몰랐던 고객을 발견한 ‘펜더’
미국의 악기 회사인 펜더는 오랜 기간 깁슨과 함께 일렉트릭 기타 시장을 주도해 왔다. 하지만 힙합, 컴퓨터 음악 등이 유행하면서 일렉트릭 기타 시장은 점차 쇠락해 갔다. 펜더는 2011년에 170만달러(약 23억4753만원) 적자를 내고 거의 파산할 뻔했다. 위기감 속에서 2015년 최고경영자(CEO)로 펜더에 합류한 앤디 무니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고객 데이터를 수집했다.
그때까지 펜더는 유명 기타리스트의 취향에 맞는 기타를 만들었고 록스타가 되려는 뮤지션(음악가)을 자사 고객으로 굳게 믿었다. 최고 품질의 기타를 만들어 파는 게 당연한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그러나 데이터는 완전히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기타를 구입하는 사람의 45%는 초보자였다. 초보자의 90%는 1년도 안 돼 기타 배우기를 포기했고 포기하지 않은 10%가 꾸준히 기타를 재구매하거나 다른 기기를 추가 구매했다. 기타 구입자의 50%는 여성이었다. 새로 구입한 사람은 기타를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고객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자 초보자가 기타를 쉽게 배워 애호가가 되도록 돕는 게 핵심 가치가 됐다. 애호가가 늘면 재구매가 느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펜더는 2017년 펜더 플레이라는 온라인 동영상 강의 앱을 출시했다. 원하는 음악 장르를 선택하면 강의 영상이 추천되고 인기곡의 첫 번째 기타 리프(반복되는 악절)를 30분 안에 직접 칠 수 있도록 유명 연주자가 이끌어줬다. 초보자가 손가락을 다치지 않게 줄을 튕기는 방법을 알려주고 튜닝도 앱에서 쉽게 할 수 있게 했다.
펜더 플레이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2년 만에 500만 명의 이용자를 모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펜더 플레이는 더욱 빛을 발했다. 무료 학습 기간을 30일에서 90일로 늘리자, 집에서 따분하게 있기보다 기타를 새로 배우려는 구독자가 대폭 늘었고 동시에 기타 판매량도 급증했다. ‘남성 뮤지션’에서 ‘기타를 배우고 싶은 남녀 초보자’로 자사 고객을 재발견한 덕분에 펜더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다.
필자가 몸담았던 보험회사도 비슷한 여정을 겪었다. 수십 년 동안 텔레마케팅으로 크게 성장해 왔지만, 날이 갈수록 고객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전화 영업은 비대면으로 상품을 안내하고 가입까지 완료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반면에 고객 입장에서 직접 만나는 부담이 없고 저렴하면서도 필요한 보험에 편하게 가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고객은 점점 더 전화 피로감을 호소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끊는 경우가 많았다. 보험금 수령 후 바로 떠나는 고객이 늘었다.
회사는 고민이 깊어졌고 모든 리더급이 직접 고객을 깊이 이해하도록 리서치 프로그램을 8개월간 진행했다. 텔레마케터 체험, 고객 데이터 분석, 온라인 설문, 전화 인터뷰를 통해 고객을 다시 살폈다. 이러한 노력으로 비대면 보장 분석, 상담 예약, 보이는 가입 서비스, 동영상 청약 확인, 가입 후 관심 콘텐츠 제공 등과 같이 고객의 필요와 니즈를 충족하는 서비스가 출시될 수 있었다.
새로 사업을 시작한다면 당연히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팔지’에 답해야 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사업을 오래 한 경우는 어쩌면 고객 변화를 놓치고 있을지 모른다.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가 던진 다음 질문을 처음의 자세로 스스로에게 다시 던져보자.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우리의 고객은 무엇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가’
이용수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IGM 이코노미 조선 칼럼을 정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