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직도 갈 길 먼 한국의 여성 인재 활용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 22-07-07 14:16 조회 2,395 댓글 0본문
OECD 남녀 임금 격차, 유리천장지수 등에서 여전히 하위권…조직 전체의 인식 수준 높여야
2년 전 지방 대도시 리더들을 대상으로 강의했을 때의 기억이다. 대부분이 교육이나 문화, 공공 기관 등에 몸담고 있는 최고 리더들이었고 ‘디지털 시대 미래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교육을 진행했다.
그런데 강의가 끝난 후 리더십 강의를 여성이 하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는 소감이 나왔다. 필자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그것도 아프리카의 이름 없는 동네도 아니고 대한민국 대도시에서 근무하는 리더들인데 말이다.
오늘 칼럼의 주제인 여성 인력에 대한 상황도 비슷하지 않을까. 과거보다 많은 것들이 바뀌고 좋아졌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는 곳과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우리 경제의 잠재 성장률을 높이고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 인력을 활용할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고 이는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은 교육 수준의 향상, 서비스업과 3차산업으로의 산업 구조 변화, 일과 가정의 양립에서 일을 우선시하는 여성들의 의식 변화 등으로 여성의 경제 활동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기업에서도 여성 인력 활용이 기업 경쟁력에 필수불가결하다고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다양한 정책과 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인사 관리 측면에서 채용·배치·승진 시 여성 비율 할당이나 우선 고려를 하기도 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여성 인재
이는 정부의 ‘적극적 고용 개선 조치’와 같은 정책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 인사 담당자들 대상의 설문 조사 결과에서는 ‘업종 특성상 여성 인력이 필요해서’와 ‘우수한 여성 인력이 많이 늘어나서’ 항목이 가장 높은 순위에 있었다. 실제 현장에서의 필요와 개인의 능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복지 측면에서 추진되고 있는 다양한 일 가정 양립 지원을 들 수 있다. 단축근무·재택근무·육아휴직 등과 같은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런 제도들은 일하는 여성들을 위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지만 이제는 남녀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육 훈련 부분이다. 과거 서비스 교육과 같은 여성 특화 직무 과정은 감소하는 반면 여성 관리자 양성과 리더십 교육은 증가하고 있다. 더 이상 남녀 구분이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 아래 여성을 위한 교육 훈련 자체를 없애는 조직도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가별 통계에서 남녀 임금, 경제 참여율 격차, 유리천장지수 등에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업 강의 현장에서도 관리자 교육부터는 여성의 비율이 확연하게 줄어드는 현상은 왜 여전할까. 여성 경력 개발 전문가인 백지연 이화여대 교수의 연구를 소개한다.
그는 최근의 성차별은 직접 차별보다 간접 차별이 훨씬 많다고 설명한다. 간접 차별은 중립적인 기준을 사용했지만 그 중립적인 기준으로 인해 특정 소수 집단에 불균등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경우 이를 차별로 보는 개념이다.
지금은 과거만큼 차별이 없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차별은 긴 시간 축적돼 이미 직장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경력이나 위치·업적 등의 차이를 크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불평등은 다음 세대의 보이지 않는 차별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유리 경력 모델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안에는 ‘유리 문(glass door)’, ‘유리 벽(glass wall)’, ‘유리 교실(glass class)’, ‘유리 천장(glass ceiling)’, ‘유리 계좌(glass account)’ 등이 모두 포함됐다.
이 중 유리 벽은 조직 입사 후 차별적 부서 배치를 포함해 출장과 같은 업무 부여에서 나타나는 간접 차별을 말한다.
입사 후 여성이 주변 부서에서 일하거나 주변 업무에 배치되면 핵심 업무는 맡지 못하게 되고 자연스레 조직 내에서 자신의 핵심 역량을 개발하고 증명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는 추가적으로 중요한 교육 훈련을 받을 기회에서 멀어지게 하며 장기적으로 승진과 임금의 차별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공무원 대상 연구에서도 승진 관련 부서는 남성 우선 배치, 승진 무관 부서는 여성 배치가 많다는 결과가 있다. 각 조직의 소위 핵심 부서에 과연 여성이 얼마나 있는지를 확인해 보면 유리 벽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상위 직급에 여성들이 몇 퍼센트가 존재하는가도 살펴야 한다. 한국의 공직 사회는 남성 중심적 인사 관행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 지배적이라는 평이 일반적이다.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분기 기준 355곳의 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 중 여성 상임 임원이 있는 곳은 14.6%(52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85.4%(303곳)는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었다.
여성 상위 관리자가 없는 조직에서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는 어떤 생각이 들까. 남녀 간 역할이 다르고 ‘저곳은 남성들의 자리’라는 학습이 일어날 것이고 점차 내면화될 것이다. 이에 따라 공기업에서의 여성 할당제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문제 해결 권한은 남성들이 가져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선행돼야 할 것은 조직 내 직원들의 인식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 조직에 존재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간접 차별에 대한 인식을 함께 공유해야 한다. 여성 리더십 교육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면 이런 교육은 남성들이 먼저 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식 자체에도 남녀 차이가 존재한다. 한국의 금융권 종사자 대상 연구에서 여성 65.5%가 유리 벽이 존재한다고 응답한 반면 남성은 26%만이 존재한다고 응답했다.
미국 연방정부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유리 천장 지각의 부정적 효과는 차별의 당사자인 여성과 소수 인종에 집중돼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와 연관해 필자가 흥미롭게 읽었던 기사가 있다. 바로 영국의 해리 왕자와 동물학자이자 환경학자인 제인 구달 박사와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인종 차별에 대한 얘기도 있었는데 해리 왕자는 “세상과 삶에 대한 관점은 학습된다”고 말하면서 “양육 방식과 거쳐 온 환경이 무의식 속에 인종 차별주의적인 시각을 갖게 하기에 인종 차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흑백 혼혈인 메건 마클과의 결혼으로 이제 인종 차별은 그의 실질적인 문제가 돼버린 것이었다. 그는 “누군가 ‘당신의 발언과 행동은 인종 차별적’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그들은 ‘나는 인종 차별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필자가 첫머리에 언급했던 남성 리더도 본인이 여성 차별적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조직 최고경영자의 인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앞선 세대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필자는 그들보다 수월하게 직장 생활을 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필자 또한 교육 현장에서 여성 리더들을 만나면 반갑고 하나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해는 마시라. 필자의 궁극적 바람은 모든 구성원들이 여성·남성이 아닌 자신의 역량을 기반으로 일하고 평가받고 성장하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칼럼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주영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IGM세계경영연구원은 한경비즈니스에 해당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칼럼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