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팔고 나면 끝? 판매 이후 고객과의 ‘진짜 관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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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2-05-26 18:24 조회 2,480 댓글 0본문
지금은 별의별 것을 다 빌려 쓸 수 있는 ‘렌털(rental)의 시대’다. 그중 대표적인 품목을 하나만 꼽자면 단연 ‘렌털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정수기일 것이다. 코웨이는 1998년 업계 최초로 정수기에 렌털 비즈니스 개념을 도입하며 렌털 시장의 선구자가 됐다. 현재 코웨이는 비데, 공기청정기, 인덕션레인지, 매트리스 등 환경 가전제품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라이프 솔루션 기업이 됐지만, 그 출발점은 정수기 제조와 판매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재고가 쌓이고 매출이 급감하자 렌털과 함께 점검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 ‘코디’를 성공적으로 도입, 정착시키며 가파르게 성장했다. 코웨이는 기존 제조업 위에 서비스라는 옷을 걸쳐 입고 고객 가치를 높였다. 이를 가리켜 ‘서비타이제이션(servitization)’이라고 한다.
서비타이제이션은 다시 말하면, 제품 판매에 초점을 맞춘 제품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고급 서비스와 솔루션을 통해 고객 가치 창출을 촉진하는 데 초점을 맞춘 서비스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는 전략이다. 사실 서비타이제이션은 이제 그 자체만으로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다. 특정 기술의 상품화나 제품 사양이 비슷해지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제품만으로 경쟁 우위를 내세우기 어렵게 된 탓이다. 또 고객의 요구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이미 많은 제조사가 유지·보수 차원에서 서비스를 부가가치로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제조사의 생존을 위해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메가 트렌드인 서비타이제이션은 이제 또 하나의 거대한 흐름인 ‘디지털화’와 결합해 ‘디지털 서비타이제이션’으로 진화하고 있다. 디지털 서비타이제이션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서비스를 더 하고 고객 가치를 높인다는 말이다. 이는 센서 같은 디지털 구성 요소를 제품에 내장하거나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서 비즈니스 모델을 근본적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코웨이 '코디'. 사진 코웨이
코웨이와 롤스로이스에서 디지털 서비타이제이션 엿보기
다시 코웨이 예로 돌아가 보자. 서비타이제이션 초기에는 핵심 동력을 코디라고 보고 서비스 인력의 질적·양적 역량 강화에 집중했다. 채용 규모를 늘리는 동시에, 항공사 승무원이나 호텔리어 등 다른 서비스 업종 교육을 도입해 코디의 전문성을 높였다. 그러나 곧 디지털 세상에 접어들며 디지털에 방점을 찍은 서비타이제이션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가령, 고객의 사소한 불만과 취향까지 빅데이터로 구축하고 이를 통해 불편 사항을 예측함으로써 고객 가치를 제고한 셈이다. 또한 IoT 사업을 적극 추진하며 제품을 시스템으로 연결해 고객 정보를 취합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였다. 공기청정기 업계 최초로 인공지능(AI) 플랫폼과 연동하기도 했다. 미국 시장에서는 아마존 ‘알렉사’를, 국내에서는 네이버 ‘클로바’와 구글 ‘구글홈’, 카카오 ‘카카오홈’을 연동한 음성명령 서비스를 제공했다. 고객이 제품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디지털 서비타이제이션으로 거듭 혁신을 이뤄낸 글로벌 기업으로는 영국의 롤스로이스(Rolls-Royce)가 꼽힌다. 롤스로이스는 제조사에서 서비스사로, 더 나아가 기술 회사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하드웨어 중심의 항공기 엔진 제조와 판매가 주 사업이었던 롤스로이스는 1990년대 후반 한 항공사로부터 유지·보수 서비스 계약을 제안받고 ‘토털케어(total care)’라는 서비스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을 재빨리 도입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제 엔진 가동 시간에 따라 요금을 청구하는 ‘코퍼레이트케어(Corporate Care)’ 모델을 개발했다. 이로 인해 고객사의 항공기 도입 비용 부담은 줄여주고 롤스로이스는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취할 수 있게 됐다. 이때 엔진 가동 현황을 파악하려면 데이터 수집에 중점을 둬야 했는데 이를 위해 각종 센서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얻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전에 오류를 자동 예측하거나 연료 절감을 위한 엔진 최적화 등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 지원을 할 수 있었다.
고객이 제품을 소유하는 순간, 기업과 소비자의 새 관계 시작
그렇다면 디지털 서비타이제이션을 성공적으로 도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고객 중심적 사고로의 전환이다. 전통적인 제조업 관점으로는 고객이 제품을 소유하는 순간 관계는 종료된다. 그러나 서비타이제이션을 향한 현대적 관점으로는 고객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순간에 관계가 시작된다.
제조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탈 것’이었던 자동차에 관한 관점은 현재 완전히 달라졌다. 이동 수단으로써 고객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하는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미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실시간 교통정보와 위성지도 보기,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인터넷 브라우저 서비스 등을 패키지로 한 구독 서비스를 선보였다.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는 전기차 모델 구매 고객에게 홈 충전기, 공동 주택 충전 솔루션, 충전 크레디트를 제공한다. 자동차 안에서 식음료 주문과 결제가 가능하고 특정 음식점까지의 길 안내와 내리지 않고 상품 수령까지 한 번에 할 수 있도록 한 ‘카페이(Car Pay)’ 시스템도 완성차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이동 수단을 제조하는 것에서 자동차에서 어떤 편의를 누릴 수 있도록 할 것인지 디자인하는 서비스사로 무게 중심이 옮겨진 모습이다.
최근 몇 년간 지구상의 거의 모든 기업이 디지털 전환을 목놓아 외쳐왔지만 많은 제조사는 스마트 팩토리와 같은 운영 효율화에 초점을 맞춘 과제만을 우선순위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사람들의 행동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면서 이들의 새로운 요구를 충족하는 것이 성공을 위한 모든 비즈니스의 최우선 순위가 됐다. B2C(기업과 소비자 간의 거래) 기업이든, B2B(기업과 기업 간의 거래) 기업이든, 고객에게 더 새롭고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디지털 전환이 급박해졌다. 비즈니스 모델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한 지금이다. 고객 관점에서 기대를 뛰어넘는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제조의 모든 단계마다 집중해야 할 영역을 재발견하고 어떻게 기술을 접목해야 할지 제조 기업의 상상력과 공감이 절실해진 때다.
김민경 IGM세계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 IGM세계경영연구원은 이코노미조선에 해당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칼럼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