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디지털 시대의 ‘협상’… ‘업스킬링’이 성공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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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1-01-04 14:00 조회 5,408 댓글 0본문
"협상을 잘 아는 사람과 협상하는 것과 협상을 잘 모르는 사람과 협상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협상을 잘하게 될까."
필자가 과거 기업에서 협상 교육을 하고 난 뒤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다. 답은 당연히 전자다. 정말로 가끔 보게 되는 장면인데 협상의 본질을 아는 사람 간의 협상은 그 모습 자체가 멋있기도 하다.
현재 우리 기업들의 협상력은 크게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협상력 향상을 위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접하게 되는 사람들의 대화에서 쉽게 느끼게 된다. 2000년 초반부터 협상력이 개인과 비즈니스의 경쟁력에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코스트를 줄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감사한 마음까지 든다. 2년 전에 다보스포럼에서도 중요한 미래 역량 중 하나로 제시된 것처럼 협상력은 하나의 필수적인 무기로 갖출 필요가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현업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발견되는 현상이 있다. 이런 협상 스킬의 향상과 커뮤니케이션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협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이 더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협상 상황에 대한 긴장감과 피로도의 문제인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는 원인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내용이다.
'이슈'와 협상하면 실패 가능성 높아
첫째는 지금까지 협상력 향상에 대한 관심이 실리를 추구하기 위한 스킬에 너무 치중돼 왔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공략하고 자신을 방어할 것인가에 대한 매우 실용적이고 전술적인 기교의 달콤함에 집중해 온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다 보니 협상의 원리를 배우는 시간에도 또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활용한 교육 현장에서도 협상 내내 전투 모드를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학습 방법에도 자신에게 가장 궁금하고 필요한 것에 더 집중하는 욕구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보고자 하는 것만 보이고 보이는 만큼 보이는 효과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협상의 원래 목적과 목표를 잃어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둘째는 협상의 대상을 자꾸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고 본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 단순하게 보면 협상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예를 들어 협상 상대·어젠다·이슈·논리·기준·정보·대안 등이다. 그런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상대방, 즉 '사람'이다. 그런데 협상의 스트레스에 눌려 많은 사람들이 어젠다와 이슈 그리고 조건들에 함몰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0.1%라도 밀린다 싶으면 시소를 타듯 주고받는 '밀당'의 릴레이를 시작한다.
상대방이 아닌 이슈와 협상하고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양쪽에서 바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만족시키는 조건을 제시하는 협상은 적어도 우리가 경험한 실제 비즈니스에는 없다. 자선 사업이 아니라면 말이다.
협상의 고수들은 좋은 질문을 건넨다
이런 상황이 공감된다면 한 번 더 두 가지에 관심을 가져보자. 협상력이 '업스킬링(up-skilling)'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첫째, 실리와 조건에 집중하지 말고 가치와 전략에 집중하는 업스킬링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협상 스킬이 늘어난 만큼 그 기교나 스킬을 보는 눈도 높아졌다. 쉽게 말해 협상에 대한 자신감에 협상 상대를 찾아다니는 듯한 눈을 가진 사람들, 즉 하수들이 쓰는 현란한 테크닉은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다.
협상 고수들과의 대화에서 느끼는 협상은 스킬을 넘어선 통찰과 전략의 게임이다. 이들은 협상을 기획한다. 굉장히 다차원적인 이해관계와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모든 상황에서 가치적인 판단을 중시한다. 그리고 실전 협상에서 예측하지 못한 변수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돌발 상황에서도 그 가치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 중요시한다.
협상을 잘하게 되는 무서운 능력이다. 우리가 자주 꿈꾸는 갑을 이기는 협상의 핵심 포인트이기도 한다. 이러한 전략적 통찰의 게임을 잘하기 위한 팁을 한 가지 소개하면 바둑에서의 복기를 생각하면 된다. 경험을 정리하고 자산화하는 것은 보통의 정성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대단하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직접 해 보라. 단 방법이 있다면 팩트 나열식의 요약이 아니라 행간의 의미를 포함한 스토리를 정리하는 것이 포인트다.
둘째, 협상은 사람과 하는 것이지 이슈와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협상 고수를 다시 한 번 소환해 보자. 고수들은 일단 자기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듣는 데 무척이나 신경 쓰고 집중하며 뛰어난 공감 능력을 발휘한다.
사실 상대방의 주장과 제안으로 협상이 이상해질 때는 방어나 상황 정리도 하기 마련인데 이 부류의 사람들은 그조차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관찰자의 시각에서 보면 어수룩하고 답답해 보이는 모습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내공은 어마어마한 경우가 많다.
이런 모습의 고수들은 한결같이 질문을 잘한다. 솔직히 말해 질문은 참 어려운 기술 중 하나다. 이슈는 항상 쟁점화가 된다. 그 이슈만 보면 쉽게 풀릴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고수는 상대방에 집중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자신을 위한 방어적 협상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한 협상을 하려는 노력과 질문들 그리고 전략이 더 큰 그림이자 효과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중요시해 온 협상이 논리적 뇌에 기초한 '기술편'이었다면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뇌에 기초한 '사람편'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협상을 잘하고 싶은 욕구는 과거나 지금이나 같다. 다만 협상의 상황이나 환경이 달라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것이다. 최근 '뉴 노멀'로 자리매김한 비대면 환경에 따라 소통이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술의 발전이 소통의 비효율성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본질이 아닌 것에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비대면 화상 소통이 많아지면서 성형 수술이 굉장히 늘어났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협상하는 방법과 소통하는 방법도 본질과 핵심에 집중할 수 있는 지속적인 업스킬링 혹은 리스킬링이 필요하다.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상대도 없고 그런 협상도 없다. 그리고 마냥 즐겁고 재미있는 협상도 없다. 협상하는 만큼 원하는 것을 얻을 확률은 높아진다. 단,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한 두 가지 핵심 요소인 '사람'과 '가치'라는 두 가지 단어는 더욱 중요시 다뤄야 할 것이다.
과거 협상 교육에서 자주 하던 말이 있다. "협상은 과학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예술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이다. 협상은 과학적인 프레임을 갖고 훈련하면 잘할 수 있다. 그건 이미 오래전부터 증명돼 왔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렇게 정의를 바꾸고 레벨을 높여 보면 어떨까. '협상은 과학적 원리를 기본으로 하는 사람 간의
예술적이고 전략적인 의사소통'이라고 말이다.
<IGM 세계경영연구원 김광진 교수>
** IGM세계경영연구원은 한경비즈니스에 해당 컬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011038502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