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구글·엔비디아의 상상력 원천은 SF 소설 ‘스노 크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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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2-06-09 10:30 조회 2,683 댓글 0본문
아이디어 고갈됐다면 SF를 보기 시작할 때…새로운 사업 아이템 찾는 데 활용해야
작년부터 메타버스가 화제다. 메타버스는 최신 용어처럼 보이지만 이미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SF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핵심 개념으로 사용됐다.
이 소설은 많은 경영인과 개발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다. 메타버스의 원조라고 불리는 가상현실(VR) 게임 ‘세컨드 라이프’를 만든 필립 로즈데일,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이 이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 사업가는 이 책을 직원들에게 건네며 “이것이 우리의 사업 계획서”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SF는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의 약자로 일각에서는 공상과학소설로 번역한다. 하지만 SF는 허황된 상상을 뜻하는 공상과는 다르다.
SF 작가로 잘 알려진 엘리엇 페퍼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서 “SF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SF는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민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경영인들은 SF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우주의 500년 역사를 그린 소설 ‘파운데이션(1942년)’에서 영감을 받아 우주 기업 스페이스X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소설 ‘다이아몬드 시대(2003년)’에서 묘사된 최첨단 교육 도구 ‘소녀의 그림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전자책 단말기 ‘킨들’을 만들었다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나이키는 신제품 개발을 위해 SF 전문가를 고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미래 기술 실제 만드는 MIT
SF는 국가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도 활용된다. 프랑스는 SF 작가들을 육군 소속으로 고용했다. SF 작가들의 임무는 첨단 기술이 군사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는 것이고 이들이 작성한 시나리오는 일급 비밀로 취급된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SF 작가를 국방 브레인스토밍 회의에 참여시킨 사례가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는 SF를 학문적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MIT는 ‘공상과학에서 최첨단 장비로(Science Fiction to Science Fabrication)’라는 과목을 운영하고 있다.
이 수업에서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SF에 등장하는 미래 기술을 실제로 만들어 볼 수 있다. MIT는 SF 작가들과 협업해 ‘12개의 내일(Twelve Tomorrows)’ 연간지도 발행하고 있다. 이 잡지는 매년 가까운 미래에 실제로 일어날 법한 12개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반대로 현실의 기술이 SF 작품 창작에 영향을 준 사례도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SF 작가 9명을 자사 기술 연구소에 초대해 극비 기술들을 공개했다. 이들은 연구소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SF 소설을 집필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들을 초청한 이유로 SF에서 영감을 얻어 기술이 발전하는 것처럼 현재 개발 중인 기술이 SF 작가에게 영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래전에 나온 SF의 상상력은 오늘날 실제 기술로 현실화되고 있다. 드라마 ‘전격 Z작전(1982~1986년)’에 등장한 음성 명령으로 조종하는 자동차는 자율 주행차 개발에 영감을 줬다.
영화 ‘에일리언 2(1986년)’에서 주인공 리플리가 에일리언과 싸울 때 착용한 파워 로더(Power loader)는 오늘날의 웨어러블 로봇과 비슷하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년)’에 등장한 홍채를 통해 신원을 확인하는 생체 인식 기술은 오늘날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SF의 상상력은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줄까. 가상현실(VR)·증강현실(AR)·혼합현실(MR)을 보여주는 세 가지 SF 작품을 통해 미래를 상상해 보자.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2018년)’에는 VR ‘오아시스’가 등장한다. VR은 현실이 차단된 100% 가상 환경이다. 주인공 웨이드는 고글·헤드셋·장갑으로 구성된 햅틱 슈트(haptic-suit)를 입고 트레드밀(treadmill) 위를 걷고 뛰며 가상 세계를 경험한다.
영화 속 VR 기기는 실제로도 만나볼 수 있다. 영국의 스타트업 테슬라스튜디오가 만든 VR 슈트는 가상 세계의 바람·물·뜨거움·통증을 실제 감각으로 구현한다.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보자
테슬라스튜디오는 VR 슈트가 “우주 비행사 훈련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스타트업 엑토VR은 가상 세계를 걸을 수 있는 VR 신발을 선보였다. 신발 바닥에 전동 바퀴가 달려 있어 사용자가 걷는 속도를 인식해 반대 방향으로 구른다. VR 신발은 한정된 공간에서 VR를 체험할 때 발생하는 이동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영화 ‘스파이더 맨 : 파 프롬 홈(2019년)’에는 AR 기기가 등장한다. AR은 현실에 가상의 정보를 덧입혀 보여주는 기술이다. 주인공 피터가 AR 안경을 쓰고 친구를 쳐다보면 친구의 스마트폰이 해킹돼 문자 메시지 내용이 허공에 뜬다. AR 안경은 애플·구글·삼성전자와 같은 공룡 기업들이 뛰어들어 개발 중이다.
지난해 소셜 미디어 기업 스냅은 AR 안경을 공개했다. 아직 양산 체제에 진입하지 않았지만 스냅은 다양한 AR 콘텐츠가 개발될 수 있도록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AR 안경을 제공하고 있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2018~2019년)’에는 MR 게임이 등장한다. MR은 AR과 VR이 합쳐진 것으로 현실과 가상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주인공 유진우가 MR 렌즈를 끼면 눈앞에 가상의 무기가 보이고 무기를 손에 들고 마치 진짜처럼 적과 싸울 수 있다.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는 MR 기술을 접목한 협업 플랫폼 ‘메시’를 공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람들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존재와 만나 협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SF의 상상력은 현실이자 미래 가능성이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왜 학교에서 SF를 가르치지 않는가. 역사를 가르치면서 미래학 과목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를 탐구하듯이 미래의 가능성도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라며 SF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미래에 펼쳐질 일들의 미리 보기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고 상상력의 가치를 강조했다.
사실 기업들이 상상력을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비용·시간·기술 등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면 생각이 경직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SF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 보자. 현실의 제약에서 벗어나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백재영 IGM세계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 IGM세계경영연구원은 한경비즈니스에 해당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칼럼 링크